글쓰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2) 글, 그림 - 이목 2. 안내인 마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컸다. 아래에서 볼 때는 산맥 사이에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는 절벽에 만들어진 층계 구조로 이루어진 마을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마을의 입구를 통해서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니 높은 고도의 평야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 옆에도 산들이 그대로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흰 안개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어서 마치 공중에 세워진 마을 같았다. 나는 팀원들을 대기시키고 조감독과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몇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를 경계의 눈초리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이미 나는 예전부터 저런 눈빛들을 보았었고 나와 함께 긴 세월을 일했던 조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조감독은 그들에게 .. 더보기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글, 그림 - 이목 1.12시간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다. 실재하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그곳의 사람들과 현상들을 목도하고 기록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단순히 포착하는 카메라의 셔터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윤리이다. 윤리가 결여된다면 다큐멘터리는 완성될 수 없다. 윤리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진실로서 관철할 수 없고 그 누구의 눈물이 나 환희도 담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투철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매 순간 작업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수년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다져온 신념이자 의식이다. 그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12시간이 걸렸다. 내가 가는 마을은 북쪽의 안개 낀 산맥들 사이에 협소하게 껴있는 높은 곳.. 더보기 작은 땅 세상이 날 버렸다. 날 버린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 없이 오직 나 홀로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는 존재한다.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았다. 아니, 구원을 바라기 이전에 그 누구도 나의 존재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나는 여기 버젓이 서있는데 살려달라고 소리 치진 못하지만 살려달라는 눈빛만은 항상 그들에게 보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가끔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나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존재하는 이 땅덩어리는 그 누구도 초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았다. 내가 이 땅덩어리를 나가기엔 그 밖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런 칠흑 속의 무엇인가가 너무 두려워, 그 알지도 못하는 무엇 때문에 이 땅덩어리를 나.. 더보기 수필 일지 - 그냥 수진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김광섭 -생(生)의 감각- 효진이라는 아이가 이승에 머물던 시간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정확하게 36분 25초였다. 그녀는 출산 후 2분이 경과했음에도 호흡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이후 10분이라는 시간이 넘게 지나도 심장박동수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결국 24분 25초가 지나고 효진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효진의 어머니였던 오연은 태어나 지금까지는 겪지 못한 종류의 고통을 느꼈고 출산의 고통의 후유증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생명의 열기를 완전히 차갑게 적셔버렸다. 그녀의 남편이자 이 모든 고통의 순간들을 같이 목도(目睹)한 우진 역시도 더 이상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더보기 수필 일지 - 돌담 때는 여름이어서 화창하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땅바닥에는 여름이 뿌려놓은 풀잎들이 무성해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돌담의 표면은 시간이 준 상처들로 거칠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자란 강고하고 완고한 생명력을 지닌 관목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건축물이었다. 그 어떤 인조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기를 쓰고 돌담 가까이 걸음을 걸으며 두 눈을 부릅뜨고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도리어 자연이 주는 완전함에 기가 죽고 만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이 아름답고 단단한 돌담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작은 편의시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보강하고 그들의 비밀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였던 인공적인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돌 사이.. 더보기 수필 일지 - 기억의 비탈길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 시간이 지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등대의 표면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읍이었는데 그곳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 두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읍에서 자란 아이들은 중학교까지 학업을 마치면 저 멀리 도시 쪽으로 고등학교를 갔다. 나 역시도 중학교 때까지만 이 작은 읍에서 등교를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은 사실상 인구수의 감소로 읍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하나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실의 기억이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파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은 그 기억의 원초적인 병풍(屛風)이라고 .. 더보기 수필 일지 - 편지 난 천둥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을 하며 잠에서 깼다. 일어났을 때 이불에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 물의 출처를 찾기 위해 살폈지만 그 물의 주인은 내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난 눈물을 훔치고는 식은땀을 닦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하나 잠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잠을 자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하였다. 그 악몽을 다시 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난 다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았다. 달은 내 애달픔이라도 이해해준다는 듯 구름에 자기 몸을 숨겨 날 지켜봐 주었고 파도는 내 혼란한 심정을 대신 전해주기라도 하듯 절벽을 치며 일렁였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고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더보기 수필 일지 - 사랑의 예감 사랑의 예감(豫感) 봄이 되어서인지 따스한 햇살이 벚꽃이 만발한 벚꽃나무의 우듬지를 스치고 있다. 봄바람은 반갑다는 듯이 벚꽃잎을 품어서 나에게로 살랑살랑 다가오고 더 이상의 오한이나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따뜻함과 봄 특유의 풍요로움만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에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며 공원에서 똑같이 봄 풍경의 풍족함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그동안의 차가웠던 상처를 천천히 내보이며 자생(自生)의 꿈을 꾸고 있어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나는 공원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산책로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산책로로 빠져나가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없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도 벚꽃이 만발해있어서 봄의 정취는 충분히 즐길 수 있거니와 내가 지니고 ..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