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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지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5) 글, 그림 - 이목 5. 촬영 촬영하면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기에 나는 팀원들, 특히 신입한테 거듭 주위를 요했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여러 번 교육을 했지만 일상적인 부분들 중에서는 의식의 끈을 잡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실수를 할 수 있다. 무의식의 작용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끔찍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 나는 신입에게 겁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때로는 강도 높은 주의로 환기함으로써 사전에 실수를 방지하는 것도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나름 중견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난 뒤 깨달은 방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신입은 나를 대할 때 군기가 바짝 든 이병처.. 더보기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4) 글, 그림 - 이목 4. 조감독과 나 아침부터 조감독은 그림을 그리는 소년을 찾고자 했다. 그는 나에게 어제 사진으로 보여준 그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은 이미 지워져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조감독은 내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알려달라는 말을 거듭해서 우리는 함께 안내인 청년이 어제 안내했던 우물 근처로 향했다. 아침의 마을은 고요한 안개에 휩싸여 있었고 마을 옆의 높은 산봉우리에도 거대한 안개가 두 팔을 벌리고 산을 안고 있었다. 산에는 항상 안개가 붙어 있었으므로 이곳에 온 지 꽤 시간이 지난 우리에게는 그저 평범한 광경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사실 조감독과 나는 일반적인 신기하다거나 진기하다고 인식되는 풍경이나 현상에 대해서 익숙해져 있었다. 그.. 더보기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3) 글, 그림 - 이목 3. 그림을 그리는 소년 일주일간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교섭했다. 그들에게 우리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함이 친밀함을 만들 듯이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다양한 일들을 하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며 그들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 노력했다. 조감독도 최대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대했다. 그는 거의 웃음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웃음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 웃음을 짓지 않았다. 나는 마을을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마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밑에 있는 산에 내려가서 열매를 따거나 목재를 구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노동하였고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군중이라는 느낌보다도 하나의 거대한 가족과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서.. 더보기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2) 글, 그림 - 이목 2. 안내인 마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컸다. 아래에서 볼 때는 산맥 사이에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는 절벽에 만들어진 층계 구조로 이루어진 마을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마을의 입구를 통해서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니 높은 고도의 평야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 옆에도 산들이 그대로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흰 안개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어서 마치 공중에 세워진 마을 같았다. 나는 팀원들을 대기시키고 조감독과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몇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를 경계의 눈초리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이미 나는 예전부터 저런 눈빛들을 보았었고 나와 함께 긴 세월을 일했던 조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조감독은 그들에게 .. 더보기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글, 그림 - 이목 1.12시간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다. 실재하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그곳의 사람들과 현상들을 목도하고 기록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단순히 포착하는 카메라의 셔터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윤리이다. 윤리가 결여된다면 다큐멘터리는 완성될 수 없다. 윤리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진실로서 관철할 수 없고 그 누구의 눈물이 나 환희도 담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투철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매 순간 작업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수년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다져온 신념이자 의식이다. 그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12시간이 걸렸다. 내가 가는 마을은 북쪽의 안개 낀 산맥들 사이에 협소하게 껴있는 높은 곳..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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