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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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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 이목

 

 

 

 

 

1.12시간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다. 실재하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가 그곳의 사람들과

현상들을 목도하고 기록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단순히 포착하는 카메라의 셔터와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장 중요한 윤리이다. 윤리가 결여된다면 다큐멘터리는 완성될 수 없다. 윤리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진실로서 관철할 수 없고 그 누구의 눈물이 나 환희도 담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투철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매 순간 작업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수년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다져온 신념이자 의식이다.

 

그 마을에 도착하기까지는 12시간이 걸렸다. 내가 가는 마을은 북쪽의 안개 낀 산맥들 사이에 협소하게 껴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새벽부터 산맥 아래의 마을에서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그곳에는 일정한

수준의 인프라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원시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고 산의 마을

사람들은 원초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우리와 교섭한 아래 마을의 마을 회관의 실장은 말했다. 그러면서 실장은 약간의

우려석인, 그러나 무례하지는 않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들이 당신들에게 그렇게 호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지역들이 으레 그렀듯이 폐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 생각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들이기에 그들 앞에 저런 것들을 무턱대고 들이댄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라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실장이 저런 것이라고 한 것은 나의 뒤에서 조감독이 들고 있는

첨단 카메라였다. 그 외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확실히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이질적이고 낯선 것들이었다. 그는 또한 '저기 있는 것들을 전부 가지고 갈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것들만 챙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조감독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감독은 처음에는 실장의 말에 귀 기울이느라고 나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다가 이내 눈치를 채고는 카메라를 들고 뒤편으로 갔다. 그 후, 실장과 나는 몇 차례의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고는 나도 조감독과 함께 우리 팀이 속한 컨테이너로 향했다. 조감독은 컨테이너를 갈 때'이것들을 가져오기까지

정말 힘이 들었는데.... 그대로.... 가져오게 생겼네요'라고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나 딱히 이견을 제시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외부인이었고 그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조감독 역시도 이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컨테이너에 가서도 능숙하게 가져갈 것들을 정리했다. 그는 초소형 카메라들과 작은 카메라들을 챙겼다. 다른 팀원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나는 잠시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고개를 들어 우리가 앞으로 향할 산의 마을이 위치해 있다는 곳을 바라보았다. 위압적이고 거대한 산맥에는 두꺼운 안개가 몇 겹이나 둘러싸고 있어서 마을은 윤곽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 마을의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런 곳에서 아직까지도 살고 있는

것일까? 실장의 말로는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저곳에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저런 곳에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날,. 기존에 이미 이곳에 오기 전 기획에서도 최소화시켰지만 한 차례 더 최소화시켰다. 나는 실장의 말대로 산의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를 원하지 않았고 불화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만약 우리의 경솔하고 오만한 행위로

말미암아서 그들이 어떠한 피해라도 입는다면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부당한 대우가 있더라도 이 기획을 페기 하겠다고

산으로 향하기 직전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윤리 없이는 할 수 없는 직업인 것이다.

산으로 향하는 길은 차를 타고 일정한 부분까지 이동하는데 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 그다음부터는

줄곧 걸었다.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형편으로 차를 타고 많이 이동을 할 수 있다고 현지 운전사는 말했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만 8시간이 걸렸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실장이 우려한 바를 거듭 이해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만약 실장의

말을 어기고 더 좋은 화질이나 조건을 위해서 그 기기들을 챙겨 왔다면 우리는 아마 마을에 도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얼굴에는 땀이 차고 팀원들 중 한 명은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합류한 신입 팀원이었다. 그 외에 나와

조감독, 그리고 이전에도 함께했던 팀원 두 명은 나름 익숙하게 이동했다. 산을 오르는 중간중간에 산의 마을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보이는 깃발이나 담 같은 것이 보였다. 주위에는 안개가 껴 있었고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안개가 가득하여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서 우리는 마을의 입구랄 만한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아무런 미사여구적인

부분이 없이 오직 마을 사람들만이 이동할 수 있도록 표시해 둔 큰 깃발과 울타리만이 있었다. 과연 이들이 외부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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