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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 세상이 날 버렸다. 날 버린 이 세상에 내 편이라고는 하나 없이 오직 나 홀로 한 발자국도 디딜 수 없는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나는 존재한다.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았다. 아니, 구원을 바라기 이전에 그 누구도 나의 존재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나는 여기 버젓이 서있는데 살려달라고 소리 치진 못하지만 살려달라는 눈빛만은 항상 그들에게 보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가끔가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나를 외면하기에 바빴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존재하는 이 땅덩어리는 그 누구도 초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았다. 내가 이 땅덩어리를 나가기엔 그 밖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런 칠흑 속의 무엇인가가 너무 두려워, 그 알지도 못하는 무엇 때문에 이 땅덩어리를 나.. 더보기
수필 일지 - 그냥 수진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김광섭 -생(生)의 감각- 효진이라는 아이가 이승에 머물던 시간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겠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정확하게 36분 25초였다. 그녀는 출산 후 2분이 경과했음에도 호흡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이후 10분이라는 시간이 넘게 지나도 심장박동수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결국 24분 25초가 지나고 효진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효진의 어머니였던 오연은 태어나 지금까지는 겪지 못한 종류의 고통을 느꼈고 출산의 고통의 후유증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생명의 열기를 완전히 차갑게 적셔버렸다. 그녀의 남편이자 이 모든 고통의 순간들을 같이 목도(目睹)한 우진 역시도 더 이상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보기가 두려웠다. 앞으로 한 걸음만 더.. 더보기
수필 일지 - 돌담 때는 여름이어서 화창하지만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땅바닥에는 여름이 뿌려놓은 풀잎들이 무성해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돌담의 표면은 시간이 준 상처들로 거칠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그곳에서 자란 강고하고 완고한 생명력을 지닌 관목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기묘한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건축물이었다. 그 어떤 인조적인 부분을 찾을 수 없고 아무리 기를 쓰고 돌담 가까이 걸음을 걸으며 두 눈을 부릅뜨고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도리어 자연이 주는 완전함에 기가 죽고 만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는 이 아름답고 단단한 돌담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작은 편의시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보강하고 그들의 비밀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였던 인공적인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돌 사이.. 더보기
수필 일지 - 기억의 비탈길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 시간이 지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등대의 표면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읍이었는데 그곳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단 두 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읍에서 자란 아이들은 중학교까지 학업을 마치면 저 멀리 도시 쪽으로 고등학교를 갔다. 나 역시도 중학교 때까지만 이 작은 읍에서 등교를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 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지금은 사실상 인구수의 감소로 읍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하나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실의 기억이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파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은 그 기억의 원초적인 병풍(屛風)이라고 .. 더보기
수필 일지 - 편지 난 천둥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을 하며 잠에서 깼다. 일어났을 때 이불에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 물의 출처를 찾기 위해 살폈지만 그 물의 주인은 내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난 눈물을 훔치고는 식은땀을 닦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하나 잠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잠을 자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하였다. 그 악몽을 다시 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난 다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았다. 달은 내 애달픔이라도 이해해준다는 듯 구름에 자기 몸을 숨겨 날 지켜봐 주었고 파도는 내 혼란한 심정을 대신 전해주기라도 하듯 절벽을 치며 일렁였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고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더보기
수필 일지 - 풀숲 풀숲 순간 섬광이 일더니 천둥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잠이 깬 남자는 짜증이 났는지 머리를 기대로 있던 베개를 한쪽으로 던지고 미간에 인상을 찌푸렸다. 방 안은 어둠에 휩싸였기 때문에 신경질적인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히스테릭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에서는 거친 빗소리와 창문 유리를 타고 흐르는 빗물이 밤의 고요한 적막 속에서 조용히 끓고 있는 주전자 소리처럼 남자의 귀에 생생히 들려왔다. 그는 잠을 방해받고 다시 잠을 청하려면 잠이 멀리 날아간 즉시 그의 머릿속에 침투하는 수많은 상념들을 상대로 엄청난 집중을 요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임을 본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의 그였다면 자신의 잠을 빼앗아 버린 요.. 더보기
수필 일지 - 사랑의 예감 사랑의 예감(豫感) 봄이 되어서인지 따스한 햇살이 벚꽃이 만발한 벚꽃나무의 우듬지를 스치고 있다. 봄바람은 반갑다는 듯이 벚꽃잎을 품어서 나에게로 살랑살랑 다가오고 더 이상의 오한이나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따뜻함과 봄 특유의 풍요로움만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에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며 공원에서 똑같이 봄 풍경의 풍족함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그동안의 차가웠던 상처를 천천히 내보이며 자생(自生)의 꿈을 꾸고 있어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나는 공원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산책로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산책로로 빠져나가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없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도 벚꽃이 만발해있어서 봄의 정취는 충분히 즐길 수 있거니와 내가 지니고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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