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사랑의 예감

728x90

사랑의 예감(豫感)

 

 봄이 되어서인지 따스한 햇살이 벚꽃이 만발한 벚꽃나무의 우듬지를 스치고 있다.

봄바람은 반갑다는 듯이 벚꽃잎을 품어서 나에게로 살랑살랑 다가오고 더 이상의 오한이나 추위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따뜻함과 봄 특유의 풍요로움만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에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걷고 있는 산책로며 공원에서 똑같이 봄 풍경의 풍족함을 느끼면서 마음속으로 그동안의 차가웠던 상처를 천천히 내보이며 자생(自生)의 꿈을 꾸고 있어 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나는 공원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산책로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산책로로 빠져나가서 비교적 사람이 많이 없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도 벚꽃이 만발해있어서 봄의 정취는 충분히 즐길 수 있거니와 내가 지니고 있던 아픔도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발,한 발 봄의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하나의 상념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것은 바로 예전부터 쭉 생각하고 있었던 사랑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핑계로 사랑에 관한 씨앗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다가 그저 방치해두고만 있었다.

사랑의 씨앗은 인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애정을 자양분으로 삼으므로 나의 이러한 유리(遊離) 적인 행위는 사랑의 씨앗이 자라나는 데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씨앗은 서리가 낀 얼어붙은 포도처럼 말라비틀어져 버려서 구분하는 것도 어려웠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얼어붙고 망가져버린 씨앗을 다시금 꺼내어서 진심 어린 애정의 유수(流水)를 부어주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이 씨앗을 심도 있게 관찰해 주고 어루만질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마 대다수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랑을 멀리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애증 어린 사랑의 씨앗을 그대로 품고만 있는 것이다.

슬픈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진실이기에 나는 청명하고 청운 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무심하게 눈을 감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으니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한번 불때마다 양감의 벚꽃잎들을 품에 들고는 거리에다 흩뿌렸는데 그 모습을 보면은 아 벌써 봄도 거의 끝나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괜히 쓸쓸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바람은 나에게 작은 하나의 벚꽃잎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따뜻함에 기지개를 펼 때 내 손바닥에 아주 작고 새하얗게 보이는 벚꽃잎 한 잎을 똑 떨어뜨린 것이다.

나는 긴장했다.

작은 잎은 내 손바닥에 아직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생명의 줄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생기를 채 잃지 않은 하얀 벚꽃잎이 나의 손바닥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미신을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종류의 것들 예를 들어 예지몽이라든가 하는 것들에는 흥미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벚꽃잎이 내 손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았을 때 사랑의 작은 태동(胎動)을 느꼈다.

조금 어리석고 유치하게도 보이겠지만 가끔씩은 이런 달콤한 환상에 빠지는 것이 나는 좋다.

그리고 이 작은 환상이 나에게 주는 사랑의 깊은 예감이 좋다.

그렇게 나는 산책로를 걸으면서 손바닥에서 고요히 잠자고 있는듯한 작은 벚꽃잎을 한동안 유심히 바라보았다.

728x90

'일지 > 수필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필 일지 - 돌담  (10) 2022.06.22
수필 일지 - 기억의 비탈길  (17) 2022.06.21
수필 일지 - 편지  (8) 2022.06.19
수필 일지 - 만남  (8) 2022.06.18
수필 일지 - 풀숲  (10)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