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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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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 이목

 

 

 

 

2. 안내인

 

마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컸다. 아래에서 볼 때는 산맥 사이에 협소하게 자리하고 있는 절벽에 만들어진 층계 구조로 이루어진 마을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마을의 입구를 통해서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니 높은 고도의 평야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 옆에도 산들이 그대로 밀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소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그 아래에는 흰 안개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어서 마치 공중에 세워진 마을 같았다. 나는 팀원들을 대기시키고 조감독과 함께 마을로 들어갔다. 몇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우리를 경계의 눈초리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익숙한 눈빛이었다. 이미 나는 예전부터 저런 눈빛들을 보았었고 나와 함께 긴 세월을 일했던 조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조감독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앞만을 주시했다.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생겨난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하늘은 투명할 정도로 청명했다. 아래에서는 줄곧 어둡고 흐리게만 보였었는데 이것이 진정한 하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하늘. 어쩌면 이들은 이 하늘을 보기 위해서 이곳에 사는 것은 아닐까. 이토록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어려운 조건 속에 집어넣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른 것은 아닐까. 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달콤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진정한 하늘을 채우고 있는 공기는 이토록 상쾌한 것일까. 다시금 생각에 잠기는데 옆에서 조감독이 말을 걸었다. ‘이곳은 정말 깨끗하군요. 하기야 이런 곳까지 매연 같은 게 침범할 수는 없을 테니.'.’ 그러면서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환한 햇빛에 그의 피로해 보이는 얼굴이 정면으로 드러났다. 우중충한 다크서클은 그의 초췌함을 한층 더 짙게 만들고 있었고 부슬부슬하게 헤쳐진 머리는 신경질적인 그의 기질이 돌출된 것 같았다. 그는 이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하기는 했지만 그는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보다도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더 좋아했다. 그는 행동보다 명분을 사랑했고 명분을 통해서 행동했다. 그것이 그의 사조였다. 물론 주어진 일을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리고 지금도 어떤 상태인지를. 하나 그가 나한테 불만을 제기하거나 혹은 상이한 주장에 의해서 의견다툼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나는 그에게 딱히 불만이 있지는 않았고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와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작업에 한해서는 전적으로 나를 신뢰했다. 그리고 그는 애초부터 다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에 불온의 씨앗을 심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힐끔 쳐다보고는 그에게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는 거지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도 약간의 미소로 회답했다.

나름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 말을 걸어주거나 혹은 위협의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옆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끊임없이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위해를 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온하게 있을 수만은 없다. 그들이 경계를 풀지 않았기에 우리도 팽팽한 실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더 앞으로 가자 점차로 더 큰 무리들이 우리를 에워싸는 것이 느껴졌다. 포위망은 점점 두꺼워지고 촘촘해졌고 그들은 전부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우리 둘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포위당했다. 그들이 무기를 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이게 보여서 나는 언제든지 도망을 칠 수 있도록 두 팔로 가드 자세를 취했다. 조감독은 불안한 듯했으나 그렇다고 무언가 패닉에 빠지거나 떨거나 하지는 않았다. 긴장은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젊은 청년과 그 뒤로 온몸에 치장을 한 장로처럼 보이는 백발이 무성한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청년에게 뭐라고 속삭이더니 청년이 우리에게 그들의 언어로 뭐라 말했다. 나는 사전에 그들의 언어를 어느 정도 공부했다. 하지만 희소한 언어이고 자료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정보는 소량이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서 나는 그들에게 그나마 배운 인사말을 크게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여전히 경계의 눈빛으로 또다시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말속에서 익숙한 단어가 나왔다. 그 말은 즉 마을’, 그리고아래였다. 즉 아랫마을에서 왔냐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그렇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청년이 경계의 눈빛을 풀고 한 발짝 다가오더니 말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이라는 단어와 친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다시금 경계의 눈빛을 떴으나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그렇다라고 회답했다. 청년은 이어서 노인에게로 다가가 속삭였고 노인은 우리를 힐끔 보더니 큰소리로 사람들을 향해서 뭐라 말했다. 노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게 하늘 높이 울렸고 다만 발음이 너무나도 불명확했기에 마치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느껴졌다. 그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이내 경계태세를 풀고 하던 일로 되돌아갔다. 몇 명의 아이들만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우리를 지켜볼 뿐. 노인은 청년에게 말을 하고 뒤를 돌아서 어디론가 가버렸다. 청년은 남아서 우리와 함께 걸었다. 그는 헬로라는 영단어를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아랫마을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안내인인 것 같았다. 아마도.

팀원들에게 마을로 들어오라고 하고 청년과 인사를 시켰다. 청년은 마찬가지로 처음에도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건장하고 굳쎈 팔뚝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도저히 약해 보이지 않았고 뼈도 두꺼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나약할 리가 없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청년은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마을을 걸었다. 우리가 걸을 때마다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쫓아왔다. 뛰지 않고 천천히 팀원 중에서 신입인 팀원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여기저기 살폈다. 나는 그에게로 가서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러자이곳은 지나치게 폐쇄적인 곳이에요.. 거기다 저희는 그들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곳에 온 거지.. 자.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러면서 ‘몇.’ 그러면서 ‘ 년 지나고 감독 달면 너도 너 같은 사람을 보고 이런 말을 하게 될 거야라고 웃으며 말했다. 안내인인 청년은 웃는 나를 보고 똑같이 웃었다. 그것이 처음으로 우리가 보는 산의 마을 사람의 환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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