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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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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천둥소리와 함께 짧은 신음을 하며 잠에서 깼다.

일어났을 때 이불에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나는 그 물의 출처를 찾기 위해 살폈지만 그 물의 주인은

내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난 눈물을 훔치고는 식은땀을 닦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하나 잠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잠을 자려고는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하였다.

그 악몽을 다시 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난 다시 몸을 일으켜 창문을 바라보았다. 달은 내 애달픔이라도 이해해준다는 듯 구름에 자기 몸을 숨겨 날 지켜봐 주었고

파도는 내 혼란한 심정을 대신 전해주기라도 하듯 절벽을 치며 일렁였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책상에 앉았고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이 마음을 글로라도 적고 싶었던 거 같다.

그렇게 난 펜을 집어 들고 글을 적기 시작하다가도 다시 펜을 내려놓고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며

이를 반복하다 아까 꿨던 악몽이 떠올랐다.

이 악몽을 꾼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악몽의 내용은 항상 똑같았다.

악몽의 내용은 이러했다.

나의 옛 여인이었던 그녀는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됐다며 나에게 입을 맞추고 배에 짐을 실고는 내 시야에서 금세 사라졌다.

나는 그녀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선착장에서 기다렸지만 그 기다림의 끝에는 그녀가 아닌 하나의 편지가 나에게 왔다.

그 편지 안에는 그녀의 사고 소식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런 편지를 가슴에 품고는 하염없이 울다 심해 속에 빠지며 잠에서 깨어난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도 그 이유였다.

만약 그게 그저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 세상은 잔혹하게도 나의 등대를 훔쳐가고는 내 눈물로 이루어진 바다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날 끌어내렸다.

그런 심해에는 빛조차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또한 꿈이라며 세상을 부정했었다.

이 꿈에서 깨면 그녀와 배를 타고 바람이 이끌어주는 데로 어디든 가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날 깨울 생각이 없는 건지 이 지옥 같은 꿈에서 꺼내 주지 않았다.

나의 이런 비통함을 바다에 던져도 보았지만 그마저도 파도가 내게 다시 가져와 던져주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이마저도 하나의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저 하나의 악몽이라고.

그러고는 나는 다시 생각을 다잡고서 펜을 들고는 종이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그녀에게 보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밥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뻔한 거짓말들을 적은 후 편지지를 접고 수십 장의 편지지가 쌓여있는 책상 서랍에 넣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렸고 그 여파 때문인지 파도는 더 심해져 절벽을 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달은 아직도 날 마주하기 싫은지 구름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난 깊게 한숨을 푹 쉬며 또 그녀를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잠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꿈에서 일어났을 때 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내 눈앞에 나타나 준다면

너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꼭 안아줄 텐데. 그러고는 너에게 쓴 편지를 직접 말로 전해줄 터인데

그렇게 나는 헛된 희망을 품고서는 다시 심해 깊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달이 언젠가는 구름 속에서 나와 나를 마주해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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