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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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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였다.

그는 무언가를 잃고 싶지 않은 얼굴을 한 채 벌떡 일어났다.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꿈에서 무언가를 잡고 있었는지 오른손에는 손톱자국이 있었다.

그러고는 시계를 확인하고 아무런 소리 없이 베개에 얼굴을 파묻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얼굴을 들어 올렸을 때 베개에는 눈물 자국이 묻어있었다.

새벽 340분이었다.

그는 조금 있으면 회사를 가야 했음에도

잠을 청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가끔 아직도 손톱자국이 남아있는 오른손을 보며

“가지 마...”라고.

한낱 꿈이었다.

그저 꿈에서 잠깐 본 것뿐이었다.

평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님 그저 단순한 애정결핍이었을까.

새벽 4시였다.

2시간 뒤면 회사를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저 손톱자국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오른손을 뚫어져라 볼 뿐이었다.

이젠 더 이상 가지 말라는 중얼거림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모기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자신의 오른손을 볼 뿐이었다.

계속 들려오는 모기소리도 그를 정신 차리게 하지 못했지만

모기가 그의 오른손으로 앉자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다시 오른손을 폈다. 그의 오른손엔 이제 더 이상 손톱자국은 없었고

자신의 피 인지 알 수 없는 피와 모기의 사체가 남아있었다.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4시 20분이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핸드폰에서는 6시에 맞혀둔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을 내며 일어났을 그가

오늘은 덤덤히 알람을 끄고 출근 준비를 할 뿐이었다.

새벽 6시였다.

그가 꾼 꿈은 난생처음 보는 여인에 대한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그녀는 굉장히 행복해 보였고 꿈을 꾸는 동안에

그녀는 왼손으로 뭔가를 계속 잡고 있었다.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다로도 놀러 가고 함께 장난도 치며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할 수가 있는 건지

의심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 꿈속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 꿈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 꿈속에서 빠져나온 것을 알아차리는데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꿈속에서. 아니, 그녀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확히는 아직 그녀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정신을 차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현실이라 믿고 살아가는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들고 슬프고

행복하지 않은데 현실을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 반면에 꿈속에서는 누구인지 모르는 상대와도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거기가 현실이 아닌 건지

왜 꿈속에서 살면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꿈으로 들어가기에 위해 잠을 청했고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매일 아침 들려오던 알람소리가 자신을 깨웠다.

그건 그저 꿈이라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뭐가 현실이든 꿈이든 본인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전 7시였다.

그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사를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을 열며 집 밖으로 나섰다.

밖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꿈속에 있는 거처럼 몽롱해지는 기분이었다.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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