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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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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지나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른 밤-

 

 

 

 

 

 

 

 

 

 어젯밤에 전화가 오는 바람에 급히 일어나다가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책상에 부딪쳤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을 용무도 있었거니와 급한 마음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두통과 어지러움이 계속되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전화는 친구의 전화였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였다. 그래서 결혼식 준비를 하는 과정에 나에 대한 생각이

급히 떠올라 이렇게 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나는 먼저 축하한다는 말과 동시에 지금 한국은 늦은 밤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깜짝 놀라서 사과를 했다. 아무래도 결혼식 준비과정 중에서 정신이 영

없어 보였다. 나는 친구가 누구랑 결혼하는지 왜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방의 불을 켰는데 친구는 거듭 사과하면서 다시 자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순간의 꿈처럼 지나가버린 느낌이었다.

병원에는 평일이라서 그런가 시간 때문에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어서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의사에게 어젯밤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다시금 친구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났다. 물론 의사에게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화장실에 가려다가 어두워서 넘어졌다고만 말했다.

의사는 내 말을 듣고 뇌진탕일 수도 있다는 말을 잘 모르는 진료자가 겁을 먹지 않도록 무심하게 그러나

존중한다는 태도로 말하면서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사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내가 집에 오자 벌써 하늘의 끝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오면서도 친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친구는 지금 캐나다에 있다. 어쩌면 캐나다 사람하고 결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못 본 사이에 이민을 간 건가? 갖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무엇 하나 단정 지을 수는 없어서 내 의심은 미결인 채로 집에 도착해서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가 그래 일단 다음에 하자라고 생각하고 컴퓨터를 켰는데 메일이 하나와 있었다. 친구였다.

친구는 첫말에서 어젯밤의 일을 사과하면서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캐나다에서 취업을 하고 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이랑 가까워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 여성의 부모님은

이민을 온 가족이었는데 그래서 자신은 한 번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어는 조금밖에 모른다고. 또 일이 진행되면서 안정적이게 되어 아예 자신도 캐나다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 말도 전했다.

그럼 귀화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친하게 지냈는데 우리도 벌써 못 본 지 3년이 돼 간다는 말도 전하고 있었다.....

나는 메일을 다 읽고 한번 더 읽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정말로 친했었다. 처음 대학교에서 만나 동아리를 하면서 급격하게 친해졌는데 그때 그는 외국이니 영어니 하는 것에 질색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자신은 평생 외국으로는 여행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나왔다.

영어를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 캐나다에서 일을 하고 그곳의 사람(그녀는 한국인이라고는 했지만 어쨌든 캐나다에서 태어난 사람이니까 캐나다인)과 결혼을 한다니. 인생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구나.’

나는 웃음이 나왔다. 시간은 느릿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나게 빠르게 파도의 넘실거리는 물결처럼 우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와 친구 그 사이를 한국과 캐나다라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먼 곳까지 떨어뜨렸다.

그러면서도 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심하게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호수의 미비한 파동처럼 우리 밑을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한 개밖에 키지 않아서 어둠이 조금 삐져나온 벽에 붙어있는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벌써 저녁 5시를 향해서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쓸쓸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아까의 이상한 기분의 연장선상으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나를 품 속에 끌어안 듯이 밀착되는 적적한 마음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속새로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의 메일을 보고 답장을 남겼다. 축하한다고.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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