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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거대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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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파가 오면서 추운 나날이 지속되자 유영은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졌다.

오래된 공동주택이라서 더욱 바람이 스며들어 오는 것도 같다고 생각한 그녀는 짜증이 나는 기분을 뒤로하고 어제 먹은 김치찌개의 냄새의 잔향이 아직도 부엌에 남아서 살짝 열어 놓은 창문을 닫고 방문도 닫았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났다. 너무나도 놀란 유영은 그대로 얼어붙었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래된 천장은 노랗게 색이 바래져 있는 채로 그 끄트머리 부분은 고양이가 발톱으로 긁은

듯한 스크래처가 흉하게 나 있었다. 무슨 일일까? 유영은 다시 방 문을 열고 좁은 거실로 와서 현관으로

향하려다가 이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시 방문을 닫고 이불에 누웠다. 유영의 방에는 침대가 없다. 원래는 이 집처럼 작고 낡은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겨울이 시작되면서 부쩍

추워진 유영은 커피를 침대에서 마시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커피잔을 매트리스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오래된 침대였고 나무로 만든 침대였기 때문에 커피가 벌어진 나무틈 사이로 퍼져나가는 것을

유영은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후, 유영은 침대를 버렸다. 사실 너무 오래된 침대였기 때문도 있다.

그렇게 그녀는 두꺼운 이불속에서 이번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녀는 이불에 속에 들어가서 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추위 때문에 만남을 유보해야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전화를 거는 동안의 공백 상태 때에도 금방 하늘이 무너지듯 난 소리가 계속해서 혜진의 머릿속에서 의구심을 들게 했다.

여보세요.”

. 나야.”

. ?”

저기 오늘은 못 나올 것 같은데...”

“아.. 왜?”

“그냥... 좀... 무슨..”

“아.. 그래??”

“어.... 집에.”

? 집에 무슨 일이 있는데?”

나도 아직 몰라. 지금 올라가 봐야 돼.”.”

“아.. 그래?. 안 그래도 추워서 전화를 할까 했어.”

혜진은 약간의 의심으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유영은 그런 혜진에게 보다 위에서 난 소리에 더 관심이 갔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2

 꽝!

찢어질 듯한 거대한 소리를 듣고 혜진은 너무나도 놀란 마음에 등에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은밀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가 들킨 것도 아닌데 혜진은 지나치게 놀란 자신이 수치스러운 듯 얼굴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집 안은 불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아서 어두웠다. 유일하게 혜진이 앉아있는 책상

주변만이 스탠드의 노란 불빛으로 밝아 보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있었고 햇빛이 통하고 있어서 집 안보다 환하게 보였다. 창문을 열고 주변을 살핀 혜진은 아무런 현상도 보이지 않는 밖을 무심히 보다가 차가운 공기 때문에 오한이 들면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만나기로 약속한 유영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먼저 유영에게 전화가 와서 받았다. 그녀는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약속을 취소한다고 했다. 혜진은 의심이 들었지만 방금의 거대한 소리 때문에 정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이상하게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했다. 아마도 소리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할 일이 없어졌다. 오늘 진서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부족해지는데. 그녀는 진서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이 일을 전해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망썰이다가 결심을 한 혜진은 진서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보세요. 저기..”

“어.. 혜진아”

유영이가 오늘 집에 무슨 일이 있어서 못 만난다고 하데.”

......”

그래서 어떻게 할 수가 없겠는데...”

“아... 그래?.”

어떡해?”

“어... 그럼.”

괜찮겠어? 직접 전화라도 해 보지 그래? 아니면 내가 전화할까?”

아니 괜찮아! 전화 하지마전화하지 마. 그럼.... 그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럼......”

.. 고마워. 내가 한번 해볼게.”

“아.. 그래.”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혜진은 왠지 맥이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둘의 관계가 걱정스럽게

느껴졌지만 딱히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무료해진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빛이 닿지 않아서 어두웠다.

 

3

 “하.... 힘들어”

짐을 준비하고 있던 진서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녀는 이틀 후에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는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깊이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유영과 심하게 다툰 일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투정으로

시작되었는데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져서 이제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지금에 이른 진서는 하필이면 이 시기에 몇십 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심하게

다퉈 한국에 감당 못할 무거운 납과 같은 후회의 마음을 남겨두고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러나 시간은 그런 진서의 마음을 들은 채도 안 했다.. 그래서 똑같이 몇십 년간 친하게 지낸 혜진에게

부탁을 해서 다시금 접촉의 계기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잠시 평정을 되찾고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거대한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놀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아서 멍하니 일어나 있다가 혜진에게 전화가

왔다. 유영이 집의 일 때문에 못 만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불안이 엄습했지만 참았다. 그리고 갑자기 감정이 달궈지는 듯하더니 차가운 눈물이 볼을 타고 스르르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흐느꼈다. 그러다 눈이 점차 감기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대로 잠이 든 것을 책망하듯 화들짝 놀라면서 깬 진서는 그동안 바쁜 준비로 인해서 잠을 많이 못 잔 것을 떠올리면서 급하게 시간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유영과 혜진에게서 문자가 많이 와 있었다.

다투기 전 항상 애용했던 단톡방이었다. 유영은 문자로

어제 너의 집 쪽에 인공위성이 떨어졌다던데 괜찮아?라고 거듭 혜진과 함께 보내왔다. 혜진에게는 부재중

전화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잠이 들어서 걱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서둘러서 답장을 했다.

. 괜찮아 집에 있어서.

그리고 금방 답장이 왔다.

다행이네.

전화벨이 울렸다. 혜진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혜진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온 유영의 답장을 받았다.

저기 오늘 만날 수 있을까. 잠깐.

나는 답장을 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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