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 이목

9. 조화(調和)로 가는 길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조화(調和)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의 책이었는데 워낙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이름도, 구체적인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문장만은 기억이 난다. 아마 책의 끄트머리를 마무리하는 문자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진정한 조화로 가는 길은 험준한 산맥을 고독하게 올라가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길을 영원한 고통의 심화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화로 가는 길 속에서 미쳐 그 끝을 보지 못한 채로 죽어간다. 왜냐하면 그 과정의 고통은 그들을 기만하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숙소 안에서 나와 조감독, 안내인 청년은 작은 원형 탁자를 두고 마주 앉았다. 서로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은 이미 천마디나 나눈 것처럼 피로해 보였다. 조감독은 슬픈 눈으로 바닥을 주시하고 있었고 안내인 청년은 그런 조감독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난감하게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안내인 청년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 이제 앞으로 우리가 여기에 머물 시간은 조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당신을 부른 겁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머문 짧은 시간 동안 정말로 많은 경험들을 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심성이 밝고 순수하여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지혜는 그전의 나의 삶을 비판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에서의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이곳의 대표로서 당신께 하고 싶습니다.’ 나는 진심이었다. 그러자 안내인 청년은 미소 지으면서 ‘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그러나 깊게 답했다. 조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서 ‘ 이곳의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다. 조감독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조감독을 뒤로하고 우리 둘은 여러 말들을 의미 없이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조감독이 생각을 정리하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 아까 일은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 그러나 저는 다시금 생각해 보아도 그 소년에게 지금의 인연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년이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그 어떤 것도 결정 지을 수 없겠죠. 나는 소년에게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소년과 꽤 여러 경험들을 했지만 소년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무엇 하나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무리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소년에게는 아직 주체성이 형성되지 않았고 제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에게는 이것이 기회가 아닐 수도 있겠죠.’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 지금의 소년에게는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했던 드높은 마을의 하늘과 사람들이 소년에게 더 어울릴 것입니다.’ 그는 이제 완전히 지친 사람처럼 흐물흐물해진 것 같았다. 그의 눈에 다크서클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안내인 청년은 엷게 미소 지으면서 ‘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짧게 답했다. 그 후, 조감독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내인 청년은 나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 숙소를 나왔다. 그에게도 오늘은 힘겨운 하루였을 것이다. 나는 조감독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금방 잠이 들었고 새벽의 오한을 느낄 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도 꾸지 않고 칡흑 같은 어둠 속을 천천히 항해하면서 우리는 비단과
같이 부드러운 수면의 물결을 헤엄치지 않고 천천히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잔 것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즈음에는 자기 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든이 마치 꿈결에 일어난 일들 같았다. 정말로 정신없이 지나가버린 기억들이 산만한 여운으로 남은 것 같았다. 나는 이 현란의 꿈을 다시금 생각했다. 옆에 조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찾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단지 상념에 빠져서 언제까지나 부드러운 잠결과 같은 따듯한 부위에 속해 있고 싶었다. 그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기에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일들을 벌인 것일까. 아마도 예술가적인 기질이 남아있는 영향도 있을 것이겠지만 그의 과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후회의 늪 속에서 보낸 사람이었고 그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늪의 어두운 진흙들이 그의 발치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그는 끝내 후회의
순간들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에게 이 소년의 빛나는 재능과 상반되는 환경의 아이러니함은 이성을 잃게 하기에는 충분했으리라 어쩌면 그는 소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소년과 자신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그런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정도 퍼즐이 맞춰지는 것도 같았다. 하나 단순히 과거에 대한 후회로만
엮을 수는 없다. 그 사이사이에는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개입되어 있고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이란 순수한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혼합물과 같이 탁한 탁류와 같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이란 관계와 환경 없이는 그 무엇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조감독의 말처럼 이 지금의 소년에게는 이처럼 맑고 투명한 산의 마을의 하늘이 더욱 어울릴 것이고
마을 사람들의 순수성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이 소년이 장로의 허가를 받았다는 가정 아래에서 지상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주어졌던 환경이 아닌 새로운 환경(조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기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그 아이가 정말로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가정을 해보았다. 그러나 가정을 하면 할수록 찬란해 보이는 미래가 점차로 탁해지더니
속세와 상투적인 악취가 흐르는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렇다. 조감독은 그 짧은 순간에 가정을 반복했고 미래의 변모를 본 것이었다. 결국 스스로 정해야 한다. 환경보다도 스스로 정하는 주체성이 더욱 중요하다. 행복의 가장 기복 조건은 주체성이다. 주체성이 결여된다면 행복도 결핍될 수밖에 없다. 소년은 아직 주체성의 씨앗이 꽃을 피우지 못했기에 소년에게는
기회라는 것이 의미가 없던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소년의 주체성의 꽃이 만발한다면 그때에
비로소 소년에게 기회의 의미가 생기게 되고 결정과 판단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년이 일어서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머릿속이 확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조감독이 처음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했을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시 일어선 느낌이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채로
줄곧 시간과 환경의 압박에 의해서 제대로 서지를 못하고 고통에 차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멀쩡하게 공기를 마시면서
일어서 있다. 이런 순간을 맞이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여태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래 내가 다시 일어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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