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 이목
8. 타오르는 꽃과 같다
아직까지 장로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심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조감독이 제시하고 있는 사항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이 별안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마을의 소년을 지상으로 데리고 가겠다니, 장로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이 마을의 영적인 수호자로서의 역할도 자처하고 있으니까.
조감독은 물러서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소년은 조감독에게도 장로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안내인 청년은 나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도 지금 이 순간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장로의 편에 서기보다도 중립적인 역할로서 그들을 대하고 있었기에 같은 동류에 서 있다고 판단한 나에게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시간을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처럼 눈빛을 미세하게 찡그렸다. 자신은 장로에게서 시간을 주겠다고 그의 입가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신호를 알아차렸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이미 결정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 팽팽한 흐름에 파문을 그렸다.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모두가 나를 보았다. 실은 균형을 잃고 밑으로 떨어졌다. 둘 다 동시에 나의 말에 실을 놓아버린 것이다. 조감독은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뭐라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장로는 한시름 놓아다는 것처럼 한숨을 푹 쉬고는 안내인 청년에게 뭐라 속삭인 후, 뒤편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안내인 청년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감독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로께서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할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도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년의 의견입니다. 소년에게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잠시 시간을 내어주십시오’ 나는 알겠다고 답했지만 조감독은 여전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소년의 얼굴을 살짝 보더니 이내 마음의 선로를 바꾸어 소년과 함께 장로의 거처를 나왔다. 그는 팀원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소년을 데리고 어딘가로 갔다. 나는 팀원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짧은 몇 마디를 나누고는 곧바로 그를 따라서 갔다. 나는 그의 앞에 서서 그를 멈춰 세웠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당신은 지금 지나치게 흥분해 있고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지금 당신의 귀로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차분함이 우선시 돼야 할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흥분은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하십시오. 알다시피 우리의 주제를 생각하자는 겁니다. 우리는 외부인일 뿐입니다. 또한 그들을 개화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고 선교를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당연하지만 계몽을 위한 것도 아니지요. 그럴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삶을 포착하기 위해서 이곳에 잠시 머무는 것일 뿐입니다. 이들의 환경과 삶을 말이죠.’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실제로 많은 곳을 다니면서 환경이 인간에게 주는 폐해를 목도했었죠.’ ‘그래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들을 단지 폐해라고만 치부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침투하여 개입할 권리는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당신도 이에 동조했고 적극적으로 무신경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 아이에게는 정말로 이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당신도 제발 이해해 주십시오.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아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는 뭐라 말하려고 했지만 소년의 눈망울이 눈에 들어오자 한 말을 잃었다. 소년은 겁을 먹고 있었다. 그것이 눈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 자신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상황의 방향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조감독과 다툴 수 없었다. 그도 소년의 낯빛을 살피고는 죄책감 같은 것이 든 것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는 꽉 잡았던 손의 힘을 스르르 풀었다. 소년의 손은 힘을 잃고 그 즉시 땅으로 떨어졌다. 조감독은 소년을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나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일단 돌아갑시다. 당신 말대로 지금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팀원들과 마주쳤다. 안내인 청년도 그곳에 있었다. 나는 팀원들과 조감독을 숙소로 보내고 안내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으나 조감독도 안내인 청년과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할 수 없이 그냥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조차도 균형을 잃어버린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와 조감독, 안내인 청년은 숙소로 함께 갔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벌써 오후가 되어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온통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은 구름들과 섞이고 있었다. 그것은 회오리라기보다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해가 서쪽으로 기움에 따라서 그 질감과 색감은 더욱 짙어지고 구름 언저리의 산들의 색도 똑같이 짙어졌다. 이제 산과 구름은 붉은빛과 완전히 합일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종종 촬영을 하다 보면 이런 붉은 하늘의 구름들을 봤지만 오늘의 붉은 구름들은 유독 짙고 강렬해 보여서 계속해서 눈이 갔다. 그러면서 조감독과 눈이 맞춰졌다. 조감독도 나와 같이 하늘을 보다가 맞추진 것이었다. 이 상황은 어떻게 끝이 날까. 안내인 청년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그리고 조감독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무언가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마음속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꽃과 같은 무언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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