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림 - 이목
7. 장로
마을의 장로는 산의 마을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영매이자 정신적인 지주역할도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청동기 시대의 족장이 거칠 듯한 투박하면서 날카로워 보이는 위압적인 치장을 하고 있었고 긴 백발은 양 갈래로 묶어서 장식하고 있었다. 두 눈은 주름으로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아 언뜻 보면 눈을 감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나는 그가 몇 살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의 주름살은 얼굴에 격렬한 세월의 파문을 그리고 있었으나 신비적이고 특별한 힘이 정말로 그에게 작용하고 있는 건지 이상하게도 그를 마주하고 있을 때에는 그에게서 그 어떤 노화적인 쇠퇴의 현상이나 반응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장로를 대할 때는 마을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조차도 괜스레 조심스러워지는 것이어서 가장 먼저 인터뷰를 해야 할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가 조금 늦춰질 정도였다. 그래서 마을의 가장 중요하고 중추적인 인물임에도 아직까지도 친해지지 못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의문이 든 것이다. 과연 조감독이 이 알 수 없는 먼 곳의 백발이 무성한 노인에게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 만약 말한다 하더라도 장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예측이 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유추는 당연히 거절이지만 그럼에도 이 장로라면 무언가 다른 별도의 반응을
도출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도 여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을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정말로 특별한 마력을 지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조감독과 소년을 그러한 마력을 지닌 주술사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주술사의 강한 주술에 의해서 모든 일을 그르칠 것이다. 나는 재빨리 숙소에서 나와서 카메라를 손보고 있는 팀원들에게 조감독과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고 그들과 함께 조감독의 뒤를 따랐다. 조감독은 안내인 청년과 함께 이미 장로의 거처에 도착해 있었다. 머지않아 우리도 도착했고 안내인 청년이 아닌 장로의 거처에서 일을 하는 아낙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안내인 청년은 조감독과 함께 장로와 같이 있었다. 소년도 있었다. 나는 상황이 어떤지 헤아리려고 아낙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낙은 은은한 미소와 온화한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통통한 손바닥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적어도 이
아낙의 표정으로는 이 상황이 그다지 불유쾌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은 도통 꺼지지 않았다.
나는 조감독과 장로가 있는 곳으로 가기 전에 우선 팀원들에게 이곳에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런 다음 안내인 청년이 잠시 나를 힐끔 보고는 재빨리 장로에게 무언가 속삭이고 이리로 왔다. 그때의 모습은 처음 안내인 청년과 장로를 맞이했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안내인 청년이 처음 우리가 여기에 와서 그를 맞이했을 때처럼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의
친근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를 듣자 그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금 조감독이 장로에게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장로가 그것에 반대하자 조감독이 장로를 설득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혹시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안내인 청년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감독은 무례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곳의 사람들과 다르게 매우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가 그를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 장로는 조감독의 말에 거부하고 있습니다. 조감독은 소년을 마을에서 헤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만 이곳과 떨어져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장로에게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부의 불안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안내인 청년을 다시 조감독과 장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장로에게 무언가를 말하자 장로가 나를 가리키면서 손짓을 했다. 나는 조감독과 나란히 앉았다. 조감독은 굳건한 표정을 짓고 나를 잠시 봤다.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그는 안내인 청년에게 ‘소년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자연도 물론 중요하지만 화실과 올바른 선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축복과도 같은 기회를 지금 이렇게 방기 할 수는 없습니다.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부디 생각을 조금 달리하여 소년에게 축복을 허용해 주십시오’ 조감독은 목에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안내인 청년을 이 말을 통역해서 장로에게 말했고 장로의 말을 전했다. ‘그것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축복이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상은 더러운 기가 넘쳐나고 위험이 도사립니다. 만약 이 작은 소년을 그곳에 데리고 간다면 그것은 소년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겁니다. 저는 이 아이를 책임지고 싶습니다. 지상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것은 막을 수 있는 위험입니다. 거기다 이 소년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머지않아서 스스로 자립하여 극복할 것입니다.’ 장로와 조감독은 실을 팽팽하게 한 뒤 서로 잡고 있는 것처럼 물러나지 않았다. 둘 중 한 명이라도 실을 놓는다면 실은 한순간에 힘을 잃고 바람에 저항에 의해서 흐트러질 것이다. 하지만 실은 여전히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다. 나는 내부의 불안은 잠들었지만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팽팽한 실 위해서 외줄을 타고 있었다. 가운데에 놓인 이 작은 소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둘의 대화를 지긋이 응시만 할 뿐,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소년이 유독 작게 보이기 시작하고 가련하게 느껴졌다.
이전에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거니와(이 아이는 태어날 때 미숙아였고 그로 인해서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 역시도 이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이 아이의 환경에 대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많은 환경 속에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 속을 헤엄쳐 봤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유감인 삶은
없었다.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을 경우에도. 그런데 이 소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이 소년은 이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나는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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