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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수필일지

수필 일지 - 네가 이 땅에 다시 서기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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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 이목

 

 

 

 

3. 그림을 그리는 소년

 

일주일간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교섭했다. 그들에게 우리가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익숙함이 친밀함을 만들 듯이 우리는 그들과 함께 다양한 일들을 하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하며 그들의 호의를 사기 위해서 노력했다.

조감독도 최대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대했다. 그는 거의 웃음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웃음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 웃음을 짓지 않았다.

나는 마을을 관찰하면서 나름대로 마을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밑에 있는 산에 내려가서 열매를

따거나 목재를 구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노동하였고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군중이라는 느낌보다도 하나의 거대한 가족과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서로가 친밀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그들에게는 이웃이라는 것이 가족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하나의 가족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상으로 내려간 적 없이 이곳에서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조감독과 다른 팀원들이 마을의 사내들과 함께 마을 밑의 산으로 내려가는 동안 나는 우리가 처음 온 날 만난 안내인 청년과 마을 이곳저곳들을 다니면서 마을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리얼리즘을 위해서 그들의 삶을 좀 더 정밀하게 취재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거니와 프로로서의 습관이기도 했다. 안내인 청년은 무척 친절하고 나긋했다. 그의 행동은 차분하고 여유로웠고 섣부르게 행동하거나 오해를 살 만한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금방 그에게 친밀한 호감을 느꼈고 그도 나에게 딱히 불편한 기색이 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생각보다 지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았다. 또한 과거에 여러 번 지상으로 내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그것이라고, 그는 말하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만

보면 나름대로 이 마을 또한 시간의 변화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시간에 물살에서 깎이지

않는 바위란 없었다. 아무리 속세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깊은 숲 속으로 도망친 존재도 시간의 관계만은 끊을 수 없다.

시간과 존재의 관계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확고하게 나뉘어 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실제로

모든 속세를 뒤로하고 삶을 살아가려고 부단히 도 노력하는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중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도시에 상경한 뒤 처절한 실패와 좌절을 겪은 후, 속세에서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깊은 산골짜기로 도망친 뒤, 그대로 쭉

살았던 사람인데 내가 그를 만난 시점에서는 이미 그는 늙고 병들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병원에 가야 할 것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거부했고 우리와의 만남을 하고 몇 주 후에, 산에서 죽었다. 나는 그의 죽음을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머릿속에서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보지 못했기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다.

안내인 청년과 함께 마을의 우물들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소년은 우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닥에 날카로운 돌멩이로 낙서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소년을 둘러싸고 아이들이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도 호기심이 생겨서 안내인 청년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 앞으로 다가가서 소년의 낙서를 보았다. 소년은 거침없는 작은 손으로 땅에

선을 그리고 있었다. 선은 부드럽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면서 날아다니는 파리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새 그런 움직임은 하나의 거대한 나무를 만들어내고 산을 만들어 내고 집을, 마을을 만들어냈다. 나는 주변의 상황들은 잊어버리고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떠한 화구의 존재도 그림의 메커니즘도 알리 없는 높은 산속의 한 어린

소년에 손에서 그려진 산의 마을은 너무나도 실감이 났다. 새햐얀 분필과 같은 돌멩이로 그려진 마을의 전경, 그것은, 내가 처음 지상에서 마을에 올라가기 전에 내 머릿속에서 줄곧 그려온 마을의 전경과 동일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소년은 한 번도 바라본 적 없는 마을의 전경을 묘사할 수 있는 것일까. 소년이 그린 마을은 살아 있었다. 투박한 돌멩이로서 살아있었다.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소년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안내인 청년도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소년이 그린 마을을 사진에 담았다. 나는 평소에 도 인상 깊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작은 카메라로 담았다. 조심스럽게 사진에

담기는 대상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의를 요하면서.

하루가 지나고 그날 밤, 나는 조감독과 대화를 나누면서 소년의 그림을 보여줬다. 조감독은 소년의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나와 같이 탄복했다. 그러면서 뛰어난 자질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네라고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조감독은 청년 시절,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독 소년의 그림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 소년을 만나보고 싶네요’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곧 말난 수 있을 거라고 답했다.

그렇게 소년의 그린 마을의 전경을 본 뒤로 나는 그림을 그렸던 소년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 소년에 대한 부분을 꼭

다큐멘터리에 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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